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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7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적인 방법 세 가지 12

창의성을 얻는 방법의 문제점

같은 결과를 놓고 왜 해석이 다를까?

▶창의성을 얻는 방법 세 가지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창의성 관련서적이 나오고 있다. 그 서적들에서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다. 아마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인 모양이다.

틀을 깨라

반대로 생각하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라


원하는 것만 보게 된다
하지만 위의 말들을 이해하더라도 창의성을 확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그렇다면, 옆의 그림에서 컵만 보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정확한 관찰을 통해 남들이 못보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창의성 서적에는 아래의 것들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의 틀을 깨라는 것인지?

무엇을 반대로 생각하라는 것인지?

무엇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라는 것인지?

 

이 글의 목적
어떻게 하라라는 말만 있고 '무엇을 하라'는 말은 없다. 다시 말해, 목적어가 빠졌다.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이것이 창의성과 관련된 많은 책이 실용서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특히 이공계에서 필요한 창의성은 거의 얻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 논의한다.


그림의 출처
: http://kr.blog.yahoo.com/ism_kihan/34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야만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질문을 다음처럼 바꾼다면 위의 그림에서 컵 이외의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컵이라는 틀을 깨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컵이라고? 반대로 생각하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컵이라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라



이렇게 생각한다면 위의 컵은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만약 여전히 컵 이외의 것을 못 보는 사람들은, 글을 계속 읽어 나가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본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위와 아래의 두 가지 그림들은 '루빈의 컵'이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설명한 것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두 사람만 보았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다섯 명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착시현상으로 놀라운 사실을 얻을 수 있다. 본다는 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망막으로 보는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우리가 그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사람과 컴퓨터의 차이이다. 컴퓨터로 그림을 저장하거나 스캔할 수 있지만, 그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물론, 인지과학자들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갈길이 멀다.


그림의 출처
: http://blog.daum.net/visitor/15709185


착시일 뿐인가?
혹자는 이 현상을 두고 착시현상을 유발하는 그림일 뿐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기원전부터 현재 21세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위대하고 유명한 과학자의 수는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착시현상이 위의 그림들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 과학에서의 창의성

갈릴레이, 다윈, 아인슈타인, 테슬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위대한 과학자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럼 네 명의 과학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자.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거부하고 망원경을 이용하여, 지동설을 증명하였다.

다윈은 창조론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역학의 시간과 공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거부하고, 상대성이론을 주장하였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에 만족하지 않고, 교류시스템을 발명하였다.

 

위의 업적을 본다면 네 사람은 기존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변형시켜서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위의 네 사람은 어떻게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론 적재성 관찰이라는 착시현상을 극복 했기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론 적재성 관찰이란 무엇인가?

이론 적재성 관찰 (theory-laden observation)이란 기존의 이론을 과신하여 이론의 틀 안에서만 실험과 관찰을 하는 것이다. 즉 실험을 할 때 개인의 주관적인 배경지식 때문에, 이론에 실험결과를 맞추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어떠한 실험을 하더라도, 항상 이론에 종속적인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론 적재성 관찰을 하는 경우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실험을 할 때 이론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오면 자신이 실험을 잘못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실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기발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경우에도, 잘못된 실험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과학자가 이론의 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관찰을 했다면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같은 결과를 놓고, 해석이 다른 이유
관찰의 이론 적재성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과학철학자인 핸슨이다. 이 개념으로 인해 관찰의 객관성이 과학지식의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한다고 믿고 있던 귀납주의와 반증주의에게 치명타를 남긴다. 그의 개념이 집약된 책이 Patterns of Discovery(과학적 발견의 패턴)이다. 그 책에서 예를 든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의 해돋이 장면에 관한 대화는 잘 알려져 있다: 티코 브라헤는 “태양이 떠오르는 군”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케플러는 반대로 “지구가 내려가고 있군”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티코 브라헤 처럼 이론 적재성 관찰을 한다고 핸슨은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어느 누가 함부로 기존의 이론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과학자는 예외에 속한다. 대담하게 이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출처: http://nircissus.tistory.com/417

해돋이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을까?
동일한 해돋이 광경을 보았지만,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는 관찰을 할 때 한 명은 이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이론을 배제한 관찰을 했기 때문이다. 이론을 배제한 관찰을 할 때만 정확하고, 공정한 해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론을 배제한 과학적 관찰법의 가치
관찰이 이론의 틀 안에서만 해석된다는 이 개념의 여파는 대단했다. , 의도적으로 이론을 무시하고 관찰한다면 새로운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20세기 초반의 과학적 방법론인 귀납주의와 반증주의의 단점을 극복하였다. 귀납법과 반증법은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일뿐, 가설을 발견하는 방법인 핸슨의 과학적 관찰법과는 다르다. 가설을 발견이라도 해야 검증 할 것이 아닌가? 따라서 논리실증주의자와 비판적 합리주의자가 신주 모시듯 했던 귀납법, 반증법이라는 것들은 과학적 관찰법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저작물 중 하나인 쿤의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과학 혁명의 구조)도 핸슨이 주장한 이론 적재성 관찰의 영향을 받았다. 쿤은 이론 적재성 관찰을 하는 사람을 정상과학자로 분류하고, 이론을 배제한 관찰을 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론을 만들고, 동료과학자의 지지를 받는 과학자를 과학 혁명가로 분류했다. 패러다임이라는 의미를 과학 혁명과 관련된 의미로 최초로 정의한 사람이 토머스 쿤이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나오기 전 까지 패러다임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다.

귀추법은 발견의 방법
핸슨은 관찰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 원인과 결과, 이론의 생성과정에서도 여러  사례를 들어 선이론 적재성을 증명하였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이상적인 과학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가설-연역법도 가설이 어떻게 생성되는 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즉 과학적인 이론을 만들 때 가설부터 생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핸슨에 의하면, 과학자는 가설이아니라 실험데이터로부터 시작하며데이터를 짜 맞추어 이해될 수 있는 개념적 패턴을 만듦으로써 가설이 생성된다 라고 이야기 한다. 즉 물리학자가 가설을 생성하는 방법은 오직 실험데이터에 대해 지적으로 들어맞는 개념적 패턴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귀추법이라 하며, 현재로써는 오직 귀추법만이 실험결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가설을 생성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틀을 어떻게 깰 것인가?
이제 우리는 최초에 언급한 세가지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할 수 있다.

무엇의 틀을 깨라는 것인지?                  à 이론의 틀을 깨라

무엇을 반대로 생각하라는 것인지         à 이론과 반대로 생각하라

무엇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라는 것인지? à 이론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라

 

이론을 많이 알수록 관찰의 이론 적재성은 심해진다. 그럼 이론은 모를수록 좋은 것인가?

기본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써 놓으니, 이론이 필요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정석을 모르고 좋은 바둑을 둘 수 있을까? 이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언급했던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을 다시 음미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론의 틀을 깨라                  à 이론의 틀이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깰 것 아닌가?

이론을 반대로 생각하라          à 이론과 반대로 생각하려면 이론을 알아야 한다.

이론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라 à 이론을 알아야 그것을 비틀어 생각할 것이 아닌가?

 

독자가 속한 분야의 이론을 많이 알수록 창의성을 증가시킨다.(창조의 조건 4장 참조) 이론이 방해가 되는 이유는 오직 이론 적재성 관찰을 할 때이다. 필자도 천성적으로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므로 연구를 할 때는 이론이라는 색안경을 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라

이 글의 최초에 언급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이제 명확해 졌는가? 같은 결과를 놓고 왜 해석이 다른지 이해가 되는가? 가설이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지 알았는가? 이제 여러분이 속해있는 분야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면 책을 읽을 때, 사고할 때, 실험과 관찰을 할 때 1 이론을 배제하고, 2 실험 데이터에 대해 잘 설명되는 패턴을 도출하기 바란다. 관찰을 할때 이론의 틀을 버리고, 가설을 만들 때 귀추법을 사용한다면,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두가지 방법은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결론
나는 우리 이공계가 실력이 없어서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선진국의 이공계보다 창의성이 없다면, 그 이유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당분야의 이론을 잘 습득하고, 두 가지 방법(관찰에서 이론을 배재할 것, 데이터에 새로운 패턴을 적용하여 의미를 부여할 것) 을 활용한다면 그 들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창의성, 독창성이라는 것은 거대하고, 위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발견의 방법(창의성)을 이론과 같이 큰 것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분야의 이론에는 수많은 개념이 있다. 이론에 달려있는 수많은 개념에 대해서도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를 적용한다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그렇게 하여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조그만 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참조서적



좌로부터 핸슨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테레사 M. 아마빌레의 '창조의 조건' 이다. 세권 모두 쉽게 이해되는 책은 아니다. 과학방법론(과학철학)에 대한 입문서로는 쿤 & 포퍼 (정재승)가 적당하다.


Posted by extreme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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